필리핀 다바오 Davao 에서 폭발사고가 터졌다.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폭탄테러가 더이상 뉴스꺼리가 되지 못할만한 세상이 되었지만, 이번 필리핀 다바오에서의 테러는 한번 더 되짚어봐야 사항들이 있어 보인다.
At least 12 dead, dozens hurt in Davao City blast
2001년 연말쯤, 처음 필리핀에서 생활을 시작할때 쯤 이야기다.
당시 '대통령' 은 글로리아 마가파갈-아로요 Gloria Magapagal-Arroyo 였다. 당시 필리핀은 에스트라다 Joseph Estrada 대통령이 하야 (탄핵 선고 전 스스로 사임) 하고 부통령이었던 아로요가 대통령직을 인계받아 수행중인, 정치적으로 몹시 혼란한 상황이었다.
에스트라다(좌) - 아로요 필리핀 전대통령
필리핀의 가문 정치
에랍 (에스트라다의 애칭) 의 탄핵의 '외형상' 이유는 '뇌물수수를 통한 부정부패' 때문이었지만, 사실 그 이면에 다른 이유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필리핀에는 필리핀의 경제와 사회, 문화와 심지어는 언론과 정치까지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필리핀 5대 가문' 이 존재한다. 민영화 되어있는 필리핀의 주요 사회 인프라들과 필리피노들의 의식주는 대부분 이 가문들이 운영하는 회사를 통해 공급된다. 주요 대기업이 한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필리핀에서의 5대 가문이 필리피노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에 비하면 그저 준수한 수준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2001년 탄핵의 이면에는 대중에게는 큰 인기가 있었던 영화배우 출신 대통령 '에랍' 과 막강한 가문의 후원을 등에 업고 있는 부통령 '아로요' 의 정치적 싸움이었다는 의견에 반론을 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런 필리핀의 뿌리깊은 사회적 배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에랍은 '부정부패' 혐의로 하야를 해야 했고, 아로요는 에랍의 남은 잔여 임기와 이후 또 한번의 재선에 성공을 하게 된다. 덧붙이자면, 아로요의 아버지 '디오스다도 마가파갈' Diosdado Macapagal 또한 대통령 이었다. 결국 대를 이어 대통령을 배출한 가문이 된 셈! 클락 공항을 디오스다도 마가파갈 공항으로 이름을 바꾼것도, 200페소 지폐에 아버지 디오스다도 전대통령을 새겨넣은 것도 모두 딸 아로요 대통령의 작품이다.
아로요 대통령도 선거 부정 혐의등으로 임기 내내 검찰의 조사와 기소에 시달려야 했지만, 다음 대통령직을 '아키노' 집안에 넘겨주고 임기를 마치게 되었다. 여러차례 탄핵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대통령직을 유지한채 다시 하원의원에 출마를 결행한점등 여러가지 면에서 '대단한' 정치적 결단을 보여주긴 했지만, 그것이 단순히 그녀 혼자만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두테르테의 도전
로드리고 두테르테 Rodrigo Duterte. 필리핀의 남쪽 섬 다바오에서 시장을 지낸 인물로 잘 알려진바와 같이 필리핀의 대통령 취임 이후 '마약과의 전쟁', '부패와의 전쟁' 중인 인물이다.
로드리고 두텔테 필리핀 대통령
다바오는 본래 필리핀 반군들이 주요 활동하는 지역으로 우리나라 외교부에서는 여행경보 제 3단계인 '여행제한' 지역에 해당하는 민다나오 섬에 위치한 도시다. 필리핀의 반군들은 공산세력에서 부터 이슬람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세력까지 몇개의 그룹이 존재하는데 우리에게는 '위험한 지역' 으로 알려진 이 민다나오-다바오 지역이 정작 필리피노 들에게는 '가장 안전한 도시' 로 평가받고 있는 것도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두테르테는 다바오 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부터 마약 사범등 흉악범죄에 대해서는 재판없이 사형을 집행하는 등의 초법적인 행정-사법 조치들로 유명세를 탔던 인물로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그런 그의 이미지가 큰 역할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사회 곳곳에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는 필리핀에 어쩌면 한번쯤은 필요한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2,000명이 넘는 '혐의자' 들을 재판등의 사법 절차 없이 현장에서 사살하는 행위는 분명 그의 정치경력에도 오점으로 남게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런 일들에 경찰 뿐 아니라 '자경단' 조직까지 동원이 될 정도라고 하니 사태의 심각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왜 하필 다바오였을까? 폭탄테러를 계획했던 범인들 입장에서라면 다바오라는 지방 도시보다는 대통령궁이 있는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의 '거사' 가 더 큰 이슈를 만들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몇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현 대통령인 두텔테는 매 주말마다 다바오를 방문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다바오를 방문하고 있는 기간동안 폭탄테러를 지행했다는 언론의 보도도 그 이유중의 한가지다. 게다가 현 다바오는 로드리고 두테르테의 딸인 '사라 두테르테' Sara Duterte 가 시장 Mayor 로, 그의 아들인 '파올로 투테르테' Paolo Duterte 가 부시장 Vice-Mayor 이라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파올로 두테르테(좌) 부시장 - 사라 두테르테 다바오 시장
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고향인 다바오 (마닐라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 에서 매 주말을 보내기 위해 방문하는 것도 특이할만한 상황이지만, 그 지역의 시장과 부시장이 모두 그의 아들딸이라는 점도 우리의 관점에서는 쉽게 수용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필리핀에서라면 물론 가능한 얘기다) 게다가 그동안의 시장 자리를 아버지 로드리고 두테르테와 딸 사라 두테르테가 서로 자리를 바꿔가며 가족간 연임을 이어가던 지역이라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어쩌면 이번 테러는 현직 대통령에 대한 선전포고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로드리고 두테르테는 선거에 투포에 의해 당선되고도 다수의 정치세력에 의해 하야를 해야만 했던 에스트라다를 기억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이전, 피플파워로 대통령직에 올랐지만 결국 필리핀 군부를 장학하지 못했던 코라손 아키노 전대통령을 떠 올렸을지도 모른다. 혹시 그가 다바오에서야 이미 지방 토호세력으로 자리잡은 가문이었지만, 마닐라에서의 중앙정치는 그에게는 좀 다른 생존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필리핀이 우리의 과거일까?
필리핀을 여행하고 온 사람들에게서 흔히들 필리핀이 우리나라 7,80년대 수준이라는 얘기를 듣곤 한다. 낙후된 사회 인프라와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의 생활수준을 잠시 엿보고 있자면 그 말이 딱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사회 곳곳에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학연과 지연, 혈연으로 꽁꽁 묶여 기득권을 형성하고, 국민 대다수의 뜻 보다는 일부 정치세력(그리고 그들과 결탁한 재벌세력)에 의해 국가의 운명이 좌지우지 되는 것 또한 우리의 7,80년대 얘기일까?
한때 일본과 함께 아시아의 리더였던 필리핀의 오늘의 모습은 우리의 7,80년대 과거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어쩌면 2030년 정도의 우리의 미래의 모습이 아닐까?
신문기사를 읽다가 생각이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다.